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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에 감춰진 퍼스널 스페이스를 오픈하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완벽한 타인'은 2016년에 개봉되었던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Perfetti sconosciuti)'를 리메이크 한 작품으로서.. 

서로 친밀하게 지내왔던 여러 커플들이 제한된 공간에서 각각의 스마트폰 메세지들을 공유하여 서로의 은밀한 사생활을 여과없이 들여다보게 되면서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과 결과에 직면하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프랑스판 버전으로는 '위험한 만찬', 영어 제목으로는 'Nothing to Hide'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은밀한 사적 공간이 모두 압축되어 있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일명 '메세지 공유 게임'이란 것을 제안하고 이에 응할 수 있었던 것일까?

영화는 이러한 전제를 위해 오프닝 장면에서 1984년 겨울 속초의 영랑호에서 얼음 낚시를 하다가 월식을 감상하는 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이들은 웬만한 것쯤은 거의 공유할 수 있을만큼 허물없이 지내왔고, 서로의 아내들끼리도 (표면적으로는) 매우 가깝게 만날 정도로 오랜 세월동안 꾸준히 친밀하게 지내왔던 사이였음을 오프닝 장면의 복선으로 암시함으로써 이러한 '사생활 진실게임'과 같은 다소 위험한 놀이마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이미 전제하고 있다.   

 

▣ 등장인물 ▣

  

여기서 일단 이 영화에서 각자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석호(조진웅)  

서울 의대 출신 가슴 전문 성형외과 원장

극중에서 예진의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했으면서도 병원 개업에는 도움을 준 것 같다.

일단은 매우 부유하게 성공한 케이스이며, 석호와 예진 부부 집들이 현장이 스토리 전개의 공간이 된다. 속도위반으로 일찍 결혼하여 낳은 외동딸 소영이가 극중 20세로 나온다.

예진(김지수) 

석호의 아내이며 정신과 의사. 

매우 차갑고, 시니컬하고, 합리적이며, 남편에게(?) 성적 매력 어필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의사에게만 성형을 여러 번 할 정도의 완벽주의자(?)이지만 철저하게 이기적인 성정의 소유자.

자신이 속도위반으로 결혼했기 때문에 외동딸 소영에게는 매우 엄격한 잣대로 대하고 있다.

그리고 타인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판단하려고 하며,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있다. (이러한 성향이 충격적 반전을 선사하는 개연성이 된다)

   

 

● 강태수(유해진) 

서울대 출신으로 변호사.

고시생이던 시절 자신을 뒷바라지하던 수현과 결혼하여 아이 셋을 두고 있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성향의 소유자.

음주운전 사고 때문에 아내인 수현이 대신 운전해준다. (이 사건에는 반전이 있다)

● 수현(염정아)

태수의 아내로서 전업주부.

남편 내조에 세 아이들에 대한 케어, 그리고 시어머니까지 수발하고 있다. 

문학적 취향을 소유하고 있어 시를 좋아한다.

막걸리를 좋하는 소박한 취향에 서정적인 심성을 지녔지만, 태수는 아내의 이러한 성향을 못마땅해 한다.


고준모(이서진) 

공부는 못했지만, 아버지가 선장이라 부유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별 걱정없이 성장한 배경을 갖고 있다. 

현재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장이지만, 사업 실패 이력이 많았고, 겉으로 점잖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저질 토크를 즐기며, 여자에게는 일단은 다정다감한 듯하면서도 직설적이고 다혈질적인 모습을 보인다.

여성 편력이 심한 파락호 한량에 가깝다.

● 세경(송하윤)

준모의 나이 차 많은 아내이며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 

예진, 수현과도 연령차가 있어 극중에서 약간의 세대 차가 나는 에피소드의 한 축을 형성한다.

 

●영배(윤경호)

교장선생님 집 아들로서 본인도 학교 선생님이 되었지만, 극중 현 시점에서는 백수로 지내는 듯하다. (그 사연에는 다소 충격적인 이유가 있다)


● 순대

친구들의 모임에서 참석하지 않은 인물이어서 작품에 등장하지 않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종사자.

극중 친구들의 대화에 의하면 소속사의 21살의 가수 지망생과 불륜을 저지른 것이 들통나서 이혼하고 패가망신했다. 

이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원인이 되어 '핸드폰의 문자와 비밀'이라는 주제로 촉발되는 바람에 핸드폰의 모든 메세지를 공유하는 사생활 진실게임을 하게 된다.

  

(프랑스판 버전 '위험한 만찬')

 

  

배신과 오해, 그리고 너무도 완벽한 타인

 

이 영화 '완벽한 타인'이 던지는 화두는 다음과 같다.

"가깝고 친밀한 관계라면 모든 것을 알고 공유해도 괜찮은 것일까?"

"아니면 서로에게 필요할 만큼의 일정한 간격은 존재해야만 하는 것일까?"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개인 사적 공간(퍼스널 스페이스)이 오픈되어 낱낱히 공개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동안 감춰져왔던 것들이 과정없이 갑작스럽게 있는 그대로 공개되었을 때의 즉각적인 인지와 반응은 바로 '배신'과 '오해'일 것이다.

그런 것들이 어떤 동기에서든 꼭꼭 감춰두고 싶었던 개인적인 '치부'였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이제까지의 행복은 '페이크 해피니스(가짜 행복)'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 매우 두려웠을 것이다.

  

극중에서 드러나는 각자의 치부들이 민낯처럼 오픈되었을 때의 반응과 대처 또한 제각각이며, 공개된 사실에 대한 배신감과 오해는 변명을 할수록, 몰래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할수록 더욱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그것들을 이미 인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관건일 뿐, 오해를 풀기 위해 그것들에 대한 원인과 개연성을 이해하는 것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극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바로 예진과 준모의 불륜 사실이 관객들만 알 수 있도록 드러났을 때였다.

바람둥이인 준모가 자신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직원을 임신시킨 것도 모자라 그동안 친구의 아내인 예진과 불륜관계였다는 사실도 충격이지만, 그토록 냉정하고, 엄격하고, 이지적이며, 합리적이던 예진(석호의 아내)이 준모의 아내도 아니면서 이 사실을 알고 준모에게 한 행동이 더 충격적이어서 엽기적인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남편을 배신을 하고도 자신이 불륜상대에게 배신을 당한 것은 참지 못하는 극단의 이기심)

  

물론 냉소적이며 쿨한 척 보이는 위선적인 예진과 모든 여자에게 일단은 다정다감한 척하는 난봉꾼 준모 이 두 사람에게 공통적인 접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두 사람 모두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며, 가증스러울 정도로 이기적이라는 공통분모 하나가 오히려 굳이 다른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는 가장 확실한 개연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게임을 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앞으로의 결말까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일단 당장은 표면적일지라도 모두 각각의 행복한 일상을 유지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들의 치부와 잘못을 회복하고 노력하여 상대방에게 더욱 충실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 반대로 위험한 사생활로 인해 패가망신이나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의 엔딩 부분에서 바로 이러한 장면들에 대한 암시를 제공해주면서 관객들에게 그에 대한 결말을 유보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리메이크 된 블랙 코미디이면서도 씁쓸한 여운을 남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미 이들의 모든 치부를 알아버린 관객의 입장에서 느끼는 감정은 과연 어떠할까?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미 인지하고 있던 兩端의 화두에 대해 스스로의 질문을 다음과 같이 또다시 반복하게 된다.

  

'도덕적 잣대는 차체하고, 개인적인 사적 공간에 가장 소중하게 대해야 할 대상에 대한 철저한 배신이 담겨져 있다면..?'

'과연 사생활을 비롯하여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진실한 관계일까?'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번듯하게 치장된 거짓은 아닐까?'

'퍼스널 스페이스, 즉 사적 개인 공간을 인정하고, 차라리 이러한 것들을 모름으로써 얻어지는 평안함이 설령 그것이 '페이크 해피니스(가짜 행복)'라 할지라도 모두의 더 큰 행복을 지키고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일까?'

  

 

진실과 거짓, 믿음과 배신, 자신만의 만족과 상대방과의 관계, 그리고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과의 행복..

어쩌면 우리들 모두 역시 이것에 대한 결론을 이미 자신들만의 '판도라의 상자' 속에 꼭꼭 감춰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p.s.. Notice! 이 영화를 보시고 절대로 이 게임을 따라하시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