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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블리비언, 자아의 존재와 망각의 실체

이브. 2017. 3. 26.

영화 오블리비언의 이야기는,,

갑작스런 외계인의 침공을 물리쳤으나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이 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대부분의 인류가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으로 떠나버리고, 주인공인 잭 하퍼(톰 크루즈)와 빅토리아(앤드리아 라이즈버러)는 지구에서의 마지막 남은 정찰 및 바닷물 자원 채취 마무리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설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타이탄의 델타 본부에서는 이들의 임무와 팀웤의 상태를 매일같이 확인하면서 지구에 남아있는 자원의 채취와 외계인 잔당들을 소탕하는 임무를 통제, 관리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외계인과의 전쟁에서 파괴된 지구는 그동안의 디스토피아적인 SF 영화와 달리 어두침침하고 음산한 배경이 아니다.

사라져버린 익숙한 문명의 풍경이 다소 황량하긴 하지만, 맑고 드높은 하늘과 오염에서 벗어난 지구의 모습은 오히려 더욱 아름답고 밝게 묘사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영상미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주인공 잭 하퍼는 보안상의 문제 때문에 지휘부에 의한 강제 기억 삭제 조치에 동의하긴 했지만, 사라진 기억들의 퍼즐들이 불현듯 떠오를 때마다 지금 목전에 펼쳐진 세계에 대한 궁금증과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 차츰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이러한 자아 존재에 대한 의구심과 망각의 기억 이면에 인해 펼쳐진 현실의 실체에 대한 의문이 바로 이 영화의 스토리를 전개해나가는 동력이자 피아(彼我)의 반전을 이루는 메타포가 되고 있다.

  

 

이 영화 제목인 오블리비언(oblivion)의 의미는 바로 '망각'이며, 이는 oblivisci(to forget)이라는 라틴어가 어원이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잊는 깊은 잠, 즉 죽음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으로 주로 사용되는데 사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궁극의 끝, 즉 無의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오블리비언의 존재인 잭 하퍼와 빅토리아는 그들의 원래 존재가 이미 사라졌음을 의미하며, 현실에서 존재하는 그들은 결국 외계의 존재로 여겨지는 델타에 의해 망각 속에서 의해 파생된 자아없는 생산소모품에 불과한 존재들인 것이다. 

 

 

그렇다는 진정한 자아의 존재를 규정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생명활동? 육체? 영혼? 의식? 기억..?

오블리비언에 등장하는 복수의 잭 하퍼에게는 이러한 요소 중에서 유일하게 일정 시점 이전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망각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잭 하퍼에게 소위 '패퇴한 외계인 잔당들'이라 여겨졌던 인류 반란군 지하조직의 리더 말콤 비치(모건 프리먼)는 복수(複數)의 잭 하퍼들 중에서 유독 잭 하퍼49를 주목하게 된다.

그 이유는 그가 잊혀진 기억 속에서 한 조각의 흩어진 퍼즐을 찾아내어 존재의 의미를 각성하기 시작하면서 정찰과 드론 수리 임무의 프레임을 조금씩 거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콤은 그의 기억과 존재감을 회복시키는 가장 강력한 촉매로써 수면상태에서 60년간 우주공간을 표류하고 있던 과거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한 동료이자 아내인 줄리아(올가 쿠릴렌코)의 우주선을 특정 좌표로 자동 귀환시키고, 또 다른 잭 하퍼52와 조우하게 한다.

 

 


이로써 망각에 의한 현실의 실체는 모두 드러나게 되고, 잭하퍼49와 말콤은 인류를 말살하고자 지구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존재, 지배자 델타를 타겟으로 마지막 희생을 위한 '트로이의 목마'를 감행하게 된다.

생명유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죽음과도 바꿀 수 있는 자아 존재에 대한 각성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이미 언급한 화두인 '진정한 자아'란 도대체 무엇일까?

적어도 이 영화에서의 '존재'란 바로 망각의 대척점에 있는 '기억'이다.

  

 

희생을 감수한 잭 하퍼49를 대신에 엔딩부에 등장하는 또 다른 자아인 잭 하퍼52는 49와의 조우 이후 마침내 스스로도 자아를 각성하게 되어 줄리아를 찾아온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생물학적 복제품으로서 육체적으로는 쌍둥이와도 같은 엄연한 다른 개체의 존재이면서도 '그가 나이고 내가 바로 그이다'란 확신이 바로 동일한 기억의 공유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전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 대한 공감은 전적으로 개개인의 몫으로 유보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 즉 '자아'라는 개념은 오직 '기억'이라는 한정적 요소로써 모두 정의될 수는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개체마다 부여된 고유한 영혼'에 대한 정의와 고찰은 철학적, 과학적으로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이러한 고민과 의문은 단 한번도 그 실체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인류와 지구를 파괴하고 잭 하퍼를 조종하던 지배자 델타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생물학적 외계인의 등장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일각에서는 고도로 진화된 우주의 지적생명체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생물학적 생명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고도로 발달된 인공지능에 의한 메카닉적 생명체일 수도 있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관점은 이 영화의 감독이 의도한 것과 상관없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논란과 그 궤를 같이할 수도 있을 또 다른 숨겨진 화두이다. 

인공지능, 외계인, 매트릭스, 공각기동대, 그리고 오블리비언..

어쩌면 전혀 연관성이 없는듯 보이지만,, 생명, 영혼, 자아, 존재, 실체, 디스토피아적 종말.. 등의 키워드를 지닌 소재들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소재의 참신함이나 기존 SF영화에 비해 차별화 된 복선과 구성의 부재 등에 대한 논란은 차체하고, 그 중에서 영화 '오블리비언'은 각성의 모티브인 '기억'을 자아 존재에 대한 개념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

혹시 어쩌면 '실체적 자아 존재'라는 개념은 곧 의식이며, 그것은 기억으로 재생되고 발현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물체든 기계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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